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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정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른 믿음이 마음에 생기지 않는다.
신앙이란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마음의 세계다.
나를 믿고 나의 방법과 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은 신앙이라 말할 수 없고
그런 것을 말하여 종교생활이라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기록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약속된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답변은 그러하지 못한 것을 본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만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들이고 믿는 것을 말하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 곧 기록된 말씀과 인간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 만큼 다르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인간의 마음에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둘중의 하나는 제거되어야 하고 둘중에 하나만을 마음에 받아 들여야 하는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나의 생각을 믿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생각을 믿던지
둘중의 하나만이 믿음이란 공간안에 존재케 되는데 신앙이 아닌 종교인들은
바로 나의 생각도 믿고 하나님의 생각도 받아 들이는 것이 신앙이라 착각하여
평범 할 때는 그런데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 가는 것 같으나
환란이 오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과 방법만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길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가는 길이다.
누구든지 주의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자기 생각을 부인하지 않는자는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사단은 이 부분을 가장 강하게 사람들을 속여온다.
자신의 옳은 생각이면 하나님도 옳게 볼것이라 오해를 일으키고 착각하게 하여
비행 착각을 일으키듯 신앙의 착각을 일으켜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자기를 믿는 자들은 100% 비행 착각 같이 신앙의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은가? 신앙의 착각때문인 것이다.
바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방법에 맞는 길만 골라 가기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자기를 믿는 것이 어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겠는가?
죽은 자가 살아 났다. 세상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때 예수님의 잔다하시던 그 말을 받아
들일수 없어 조롱하고 만것다. 이것이 인간의 생각인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살았다이지만 인간의 생각은 죽었다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한계 밖에서 일을 하신다.
그러기에 믿음이 필요하다 인간의 상식 밖의 일들이기에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용납되지 않기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주의 길을 갈수가 없는 길인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것이다.
자기 생각과 일치 않는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들이며 가는 세계이가 신앙의 길이다.
홍해가 갈라지고, 처녀가 애를 낳고,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오병이어로 5천을 먹이는 이 세계를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미련한 것이다.
믿음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선물이다.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데 사단은 꼭 그와 같이 만들어 지는 것 양 속인다.
구원은 인간의 열심이나 노력이 단 1%도 섞일수 없는 100% 하나님의 은혜인 것인데도
사단은 사람의 생각 속에 내가 무엇인가 열심히 행하여 선을 이룰때 얻게되는 것 같이
사단은 속여온다는 것이다.
성경은 속죄제사를 들일때 양의 피가 흘려 번제단의 뿔에 발라지고 뿌려질때
이스라엘 사람들이의 선행간의 상관없이 그 뿌려진 양의 피의 제사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해지듯
십자가의 어린양의 피가 인생의 모든 죄를 사한 것이지 그 어느 인간의 조건도 필요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사단은 피의 공로보다 인간이 무언가를 행하여야 하는 쪽으로 끌로가 보혈의 능력을 희석시키는
작업을 한다는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속지 말라~!
누가 당신에게 영혼의 구원이던 , 삶의 문제속의 구원이던
예수의 피보다 인간의 선을 행하는 쪽으로 당신을 이끌어 간다면
그는 100% 사단에게 속고 있는 자이다.
누가 자기의 생각을 부인하는 자가되는가?
성경은 인간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자인지 곳곳에 기록해 놓으셨다.
로마서 3장 5절엔 "사람은 다 거짓되되..."라고 기록하신다.
아마 읽는 사람중에 고개를 끄떡이며 이 글에 동의를 하는 분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직접 "당신은 거짓말쟁이야~!"라고 대놓고 말하면 그 말에
"그래 나는 거짓말장이야"라고 쉽게 인정 할 사람은 극히 드문것이다.
성경은 진리다.
성경이 사람들을 향하여 분명하게 말하여주시길
"사람은 다 거짓되다 "기록하셨기에
내 생각과 주의 생각은 이 처럼 다르다는 것이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처럼 내 생각은 착한 자인데 성경은 거짓되다 말할때
나 자신을 부인하고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회개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또 예레미야17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누가 알리요마는..."
사람들보고 네 마음이 부패하고 썩었다 말한다면 모두 화를 낼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모두 부패하고 심히 썩었다 기록하시고 계신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당신은 착한자인가? 겸손한 자이가? 선한 일을 많이 한 자인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르면 그는 구원의 길과 멀게된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누가 알리요 마는..."이라 글을 마치고 계신것이다.
자기를 잘 모른 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실체를 이야기 해주면 자기 본 모습에 화를 내고 마는 것이다.
성경이란 거울을 통하여 실체를 보여주면
그 사람의 마음의 어둠은 빛으로 들어 나기에 그것이 싫어서 숨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은혜를 입은 자는 자기의 실체 앞에 베드로 같이"나는 죄인이로 소이다~!"라는 고백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자기를 보지 못한자는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자기의 행한 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려는 높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자는 멸망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성경이란 거울을 통하여 정확히 본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무익하고 악한자인지를 발견케 된다.
당연히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그런 근본이 악한 자신을 발견 할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은혜를 발견케 되는 긍휼을 입게되는 것이다.
사랑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은 행악의 종자라 성경은 기록한다.
사과씨를 심으면 사과 나무가 되어 사과를 맺게되는 것이 당연하다.
포도씨를 심어도 포도나무가 되어 포도를 맺는 것이 당연하다.
악의 종자를 심었는데 그 악의 나무에서 선이 맺혔다 하니 이 처럼 기막힌 일이 어디에 있나?
당신의 근본이 악한 종자임을 성경을 통하여 알려드린다.(사1:5)
당신에게서 맺힐 수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악할뿐임을 성경은 기록하지만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생각이 틀린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생들의 생각이 틀린것인가?
이미 도끼가 악한 종자로 키워진 나무 뿌리를 찍고자함의 비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로써는 불가능하기에 악한 가시나무 같은 우리는 찍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힘 받아 연결되어 사는 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깨우침 받는 자라면
그는 복된자가 될것이다.
내가 할 수 없기에 예수가 필요한 것이 신앙이다.
내게 길이 없고 내가 내 인생을 책임 질수 없어
연약하고 악하고 미련한 나의 생각과 경험을 믿는 마음의 자리에서 돌이켜
말씀안으로 돌아가 말씀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신앙인 것이다.
그래서 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는 자라면
그는 자기를 믿기에 주의 약속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방법과 경험을 따를 것이다.
그는 종교인이지 참 신앙인이 아닌 것이다. 긔런자의 결국은 멸망인 것이다.
참 신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믿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근본이 악한 나를 믿을 것인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 같이 심히 부패하고 거짓된 양심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참 진리요 생명이신 말씀만을 믿을 것인지 선택은 당신의 몫인 것이다.
자기를 정확히 본자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기에
자기 생각을 부인하여 주의 제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자의 마음에는 반드시 주인이 생기는 것이다.
사울은 모든 일에 자기의 생각을 믿고 주께 묻지 않고 행하여 멸망을 받았지만
다윗은 언제나 주인된 여호와 하나님께 묻고 행하였다.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그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못한 자들이 허다한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하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왕이 된자들이 인것이다.
왜그런가 자기 자신을 성경이란 거울 앞에서 정확하게 본 적이 없기에 자기를 여전히 신뢰하는 존재로 여겨 모든 일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믿고 살아 가기에 모든 결정과 판단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두고 살아 가기에 그의 결국은 멸망으로 인도함을 받는 문으로 들어 가게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는 주인이 존재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당신이 진정 바른 신앙인이라면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는 위치에서 돌이켜
자기 생각을 비우고 부인하여 주의 약속된 말씀으로 돌아가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성경은 기록하신다.(롬8:1)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당신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존재하는 자인가?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안에 정죄함이 결코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마음안에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정죄함이 가득하다면
당신은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인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종교인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따르려 하는 자고
신앙인은 자기가 할 수 없어 예수의 약속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인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속한자인가?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다 멸망을 당하는가?
왜 들어 가려해도 들어가는 자가 적은가?
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회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여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
근본의 악함을 회개치 못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를 부를지 모르지만
정죄함속에 살다 멸망을 받게될 것이다.
정확한 회개 곧 자신의 근본 악함을 발견하고 자기의 생각을 부인하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어린 아이 같이, 배고픈 심령이 되어 그대로 받아 들이면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간 탕자요, 은혜를 입는 그리스도인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이 진리를 누가 뒤엎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돌아 보아 정확한 믿음안에 살고 있는지 정검하는 계기를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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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목사말이 하나님 말씀 아닌가요?
바이블에는 목사들이 원하는 구절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목사들이 강간하고도 빠져 나올수 있는 구절
목사들이 횡령하고도 빠져 나옥수 있는 구절.
등등,,
나는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교회나 목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팔아 자신의 뱃속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알기때문입니다